다시 제 노래와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다시 제 노래와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글. 김수영 | 사진. 김선재(페니레인스튜디오) | 2018년 3호

2018. 03. 30 376

1986년 ‘떠나지마’라는 히트곡으로 대중의 큰 인기를 끌었던 가수 전원석.
그가 운영하는 서초동 라이브 카페 ‘떠나지마’에서 삼십 년 전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그를 만났다.
스타가 된 후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고 각종 사업도 하며 참 다채로운 인생길을 걸어왔다.
대중매체를 통해 자주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해마다 기부 콘서트를 열고 있으며, 곧 새 앨범 발표를 앞두고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첫 앨범 성공과 롤러코스터 같았던 삶

“87년 서울여대 신입생 환영 공연에서 기라성 같은 선배들 틈에 막내인 저는 제일 뒤로 밀려났죠. MC의 소개를 받고 무대에 올랐는데 굉장한 함성이 터져 나왔어요. 음반 발매 후에 전국 음악다방에서 제 노래가 잘 나간다는 건 알았는데 처음 실감한 거죠. 여대생들이 같이 따라 부르고 박수치고 발 구르고…, 그날 ‘떠나지마’만 일곱 번을 불렀습니다.”
84년 그룹 주사위의 보컬로 데뷔한 후, 86년 첫 솔로 앨범인 ‘떠나지마’가 대히트를 친 것이다. 87년 KBS가요대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혜성처럼 떠오른 그는 고음이 돋보이는 애절한 미성으로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다.
“제 외모가 좀 재미있잖아요.(웃음) 그래서인지 특채 탤런트로 연기 생활도 좀 했습니다. 변우민 씨의 권유로 <세노야>라는 드라마에 김혜수, 변우민 씨와 같이 주연을 맡았어요. 영화 <영심이>에서도 왕경태라는 남자 주인공 역을 했고요. 당시 이미례 감독님께서 저를 보시곤 ‘바로 당신이야’하며 캐스팅하셨어요. 요즘은 가수와 연기를 겸하는 게 흔하지만 당시만 해도 시선이 곱지 않았죠. 저 역시 왠지 저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 들어서 그만두고 가수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공백으로 인기의 흐름이 끊기고 음반도 시들하며 자신감이 떨어졌다. 그 즈음 결혼하며 여러 사업에도 도전했지만 실패가 뒤따랐다. 다행히 미사리를 중심으로 라이브 카페 붐이 일기 시작하던 때라 하루 일곱 군데까지 업소를 돌며 강행군을 한 덕에 음악 활동의 기반을 다시 마련할 수 있었다. 요즘은 콘서트를 주로 하고 있다.
“오는 5월에 성수동 소월아트홀에서 가수 이정석, 이규석과 함께하는 ‘토크 앤 발라드 콘서트’가 있어요. 수익금의 90퍼센트 이상을 평화의소녀상 건립과 불우이웃돕기 등 좋은 일에 쓰는 기부 콘서트입니다.”
가수 전원석은 자신의 노래는 타고난 재능보다는 노력 덕분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첫 앨범 발매 당시에도 하루에 10시간 이상 연습에 몰두했다. 끈기 하나만은 지독해서 지금은 수준급인 기타, 드럼을 배울 때도 지독히 파고들었다고. 아버지로서 그는 지금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아들 전재우에게도 음악의 전제 조건으로 ‘혹독한’ 연습을 제일 강조한다.

음악의 재미로 인도한 두 여인

초등학생 때는 축구에 재능을 보였고, 중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태권도 선수 생활을 했던 그가 음악에 발을 들여놓은 데는 고마운 두 여인이 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이름, 중학교 때 원종경 선생님입니다. 저뿐 아니라 남학생들 모두 짝사랑하던 음악 선생님이셨죠. 선생님께 잘 보이려고 열심히 했는데, 선생님이 작곡가 출신이라 저희에게 작곡 숙제를 주셨어요. 다들 못 해갔지만 저는 초등학교 때 동네 형한테 기타를 배운 덕분에 혼자 열심히 해간 거예요. 선생님이 잘 만들었다, 너 재능이 있다고 칭찬해주셔서 너무 행복했죠. 그때부터 음악이 재밌어지고 좋아지고 그랬어요.”
당시에는 대학가요제 그룹사운드가 한창 인기 있을 때였다. 고등학교 시절 그도 학교 밴드부원으로 대회 수상까지 하며 보컬의 가능성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숭실대에 입학해서는 블랙세인트라는 밴드의 싱어로 활동을 이어갔다.
“실은 아버지께서 무척 반대하셨어요. 아버지는 서울대 수학과를 나온 인텔리셨고 형제들도 모두 명문대 출신이에요. 저도 공부를 곧잘 병행했는데 음악에 관심을 보이니까 아버지께서 기타도 여러 번 부서뜨리셨죠.”
그럴 때마다 그의 어머니는 몰래 쌈짓돈을 건네며 다시 기타를 사라고 달래주곤 하셨단다. 아버지가 없을 때면 종종 아들에게 노래나 연주를 청하고는 행복한 표정으로 들어주었다던 어머니. 지금도 그는 콘서트의 맨 앞자리에 어머니를 앉히고 공연을 한다. 아들의 노래에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를 보며 그도 눈물을 훔치고 객석의 팬들도 따라운다고.

삶을 보는 새로운 눈으로

데뷔 34주년을 맞은 그에게 인생의 깨달음을 준 가장 큰 일을 물었더니 그는 바로 요즘, 기독교인이 된 일을 들었다.
“지난해 5월에 갑자기 심근경색이 와서 죽다 살았어요. 가슴이 찢어지고 불타는 것 같은 고통에 식은땀은 쏟아지고 극심한 공포감이 오더라고요. 바로 이 카페에서 쓰러졌죠. 직원들이 병원으로 옮겼는데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심장이 멈췄어요. 뚜~ 하고 기계음이 나면서 멈췄다는데 주변 소리는 다 들리더군요. 고통도 신기하게 사라졌죠. 제세동기로 다시 심장을 살리고 바로 수술실로 들어가서 스텐트 삽입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후 60퍼센트까지 죽어버린 심장 기능을 살리는 줄기세포 수술을 또 받고 12월에 한 차례 더 쓰러져 스텐트 한 개를 더 심은 그는 종교를 갖게 되었고, 세상도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좋은 일을 더 많이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넓은 인맥으로 연예인봉사단 단장을 맡고 있다. 독거어르신이나 다문화가정이 많이 사는 농촌의 낡은 집을 수리해주는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데, 매년 여름방학이면 농어촌공사를 통해 대학생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진행한다. 몸소 수리도 하고 사랑의 밥차로 배식도 하며 재능 기부로 공연까지 하고 있다.
“요즘 녹음중인 앨범 노래 제목이 ‘얄짤’인데 재미있죠? ‘떠나지마’의 첫 파트너였던 양홍섭 작곡가가 저를 위해 처음 써준 성인 가요입니다. 1집 이후로 히트곡을 못 낸 아쉬움도 있지만 이번에 크게 히트해서 좋은 일에 쓰고 싶어요.”
오는 5월에 있을 콘서트는 데뷔한 시기가 비슷한 발라더 이정석, 이규석, 전원석 세 ‘스톤즈’가 함께한다. 관객의 대부분은 셋의 팬클럽들이라 기부에도 적극적이고 응원도 해주어 늘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땐 그랬지…, 하며 공감 가는 이야기도 나누고 노래도 합니다. 독자이신 어머님들도 이번 기회로 그때 그 노래, 내가 좋아했던 스타들을 다시 한 번 추억하시고 관심과 응원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