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호기심을 넘어 집착, 괜찮을까?

이건 호기심을 넘어
집착, 괜찮을까?걱정보다는 아이가 원하는 대로

글. 최규화(베이비뉴스 기자) | 일러스트. 김지영 | 2018년 2호

2018. 02. 28 163

생각지도 못한 호진이의 한복에 대한 집착으로 우리 부부는 여전히 당혹스럽다.
이제는 쑥쑥 자라 소매 끝도, 어깨 품도 작아진 그 불편한 한복을 입고 잠자는 아이를 보며, ‘이렇게 키워도 되는 걸까’ 고민도 많이 했다.
하지만 방법은 하나다. 공감하고, 대화하고, 기다리는 것. 더디 가도 그 길뿐이다.

2013년 가을, 아내는 꿈 하나를 꿨다. 꿈속에서 처음 보는 할아버지의 말대로 눈을 감았다 뜨자, 할아버지가 가리키는 침대에 화려한 한복 치마 네 개가 펼쳐져 있었다고 한다. 아내는 잠에서 깨어나서도 한참 동안 아름다웠던 치마 색깔이 생각났다고 했다. 그리고 2014년 3월, 말 그대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예쁜 딸 호진이가 태어났다. 딸바보 아빠의 흔한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첫돌 즈음부터 호진이의 집중력과 기억력은 남달랐다. 호진이는 노래와 이야기를 좋아했는데, 딱 한 번 들려준 노래를 기억하고 부를 정도였다. 그 때문인지 말도 일찍 시작했고, 만 네 살이 되는 지금은 쓰는 어휘도 꽤 어른스럽다.
그렇게 예쁘기만 한 호진이와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만 두 돌이 지날 때쯤인가, 호진이에게 패션에 대한 ‘의견’이 생기면서부터다. 우리 부부는 사고로 이어질 만큼 위험하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동이 아니라면 아이가 해보고 싶은 대로 놔두는 편이다. 그런데도 패션에 관한 호진이의 취향(?)은 지금까지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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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나깨나 딸의 ‘한복’ 사랑

아내의 꿈 때문일까, 호진이는 한복을 좋아했다. 호진이가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뜻밖에도 ‘국악한마당’. 호진이는 “저 언니 한복 참 예쁘다”며 한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뻐했다. 지켜보는 아빠로서는 독특한 호기심이다 싶어 좋았다. 그때부터 호진이는 집에서는 물론 시장에 갈 때도, 사촌언니한테서 물려받아 아직 바닥에 질질 끌리는 한복을 입었다. 단골 정육점 사장님은 “한복을 이렇게나 좋아하는구나. 이대로 잘 크게 둬봐. 한복디자이너가 될지 어떻게 알아” 하며 기특해 하셨다.
동네 시장이 아닌, 차를 타고 큰 마트에 갈 때에도 호진이는 한복을 고집했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쟤는 명절도 아닌데 웬 한복을?’ 싶었겠지. 한국 사람이 한복 좋아하는 게 무슨 문제인가. 나 역시 호진이가 마냥 예쁘고, 한편으로 기특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내는 바닥에 끌려 더러워진 한복치마를 벗지 않겠다고 버틸까봐 걱정했고, 외출에서 돌아와 한복을 빨기까지 우리집은 여지없이 한바탕 울음바다가 되곤 했다. 호진이의 한복 사랑은 잘 때도 식지 않았다. 이제는 쑥쑥 자라 소매 끝도, 어깨 품도 작아진 그 불편한 한복을 입고 잠자는 아이를 보며, 아내는 ‘이렇게 키워도 되는 걸까’ 고민도 많이 했다. 자나깨나 입어서 어깨가 찢어지고 치마 아랫단도 다 헤져버렸다. 유독 한복에 집착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을까 궁금하지만, 아이는 아직은 ‘그냥’ 좋다고 말할 뿐이다.
한복에 대한 사랑이 조금 뜸해질 즈음, 이번엔 치마와 원피스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한번 외출하려면 옷을 고르느라 30분은 걸렸다. 색깔은 꼭 분홍색이어야 했다. 우리 부부는 호진이를 낳기 전에 “절대 딸아이를 분홍공주로 키우지 말자”고 거듭 다짐했었다. 그 다짐이 무색하게도 호진이는 ‘분홍공주’가 된 것이다.

그렇게도 피하고 싶었던 분홍공주로!

여자는 분홍색, 남자는 파란색으로 나뉘는 게 싫어서, 일부러 장난감도 분홍색은 피했다. 옷도 노란색, 보라색, 흰색처럼 성별 구분이 약한 색으로 주로 골라줬다. 튜브 하나도 분홍색 ‘루피’보다는 파란색 ‘타요’ 캐릭터가 그려진 것을, 공주 인형보다는 자동차 장난감을 먼저 사줬다. 하지만 미디어와 마케팅의 위력인지, 결국 호진이도 분홍공주의 길을 선택하고 말았다. 오직 분홍색! 분홍색 상의에 분홍색 치마바지, 분홍색 양말에 분홍색 구두까지. 우리는 ‘그래, 이것도 한때겠지’ 하며 아이의 뜻에 맞추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어린이집에 일찍 보내지 않고 집에서 너무 관대하게 키워서 남다른 고집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그러던 중 호진이는 지난해, 39개월이 돼서야 어린이집에 입소했다. 이제 친구들을 보고 선생님의 이야기도 들으며 조금 달라질 수도 있겠다고 기대했다.
기대는 첫 주부터 무너졌다. 매주 수요일엔 체육활동을 하기 때문에 원복을 입어야 했는데, 운동복인 원복은 치마가 아닐 뿐더러 분홍색은 더더욱 아니었다. 호진이는 여지없이 그 “못생긴 옷”을 입고는 어린이집에 안 가겠다고 버텼다. 아내와 나는 아이를 달래보다가 그냥 털썩 주저앉아 아이와 이야기했다.
“이 옷이 못생긴 것 같아?”
“응. 이 옷은 치마가 아니라서 못생겼잖아.”
“그래도 오늘은 어린이집에서 이 옷을 입기로 약속한 날이야. 호진이가 앞으로 어린이집에 잘 다니려면 그런 약속을 지켜야 하거든. 오늘만 이 옷 입고 내일, 모레는 호진이가 원하는 옷을 입어도 돼.”
“그래도 못생겼잖아. 으아아앙~.”
“호진아. 너무 늦으면 친구들과 간식도 못 먹고 재밌는 것도 못하는데 괜찮겠어? 호진이가 어린이집에 안 가면 선생님도 슬퍼할 거야. 지금도 호진이를 기다리고 계시거든.”
“그럼 내일은 제가 원하는 옷 입을 수 있어요?”
“그럼, 당연하지. 호진이가 원하는 옷 다 입고 가도 돼. 한복은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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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누리도록 기다리는 수밖에

다행히 호진이는 어린이집 선생님을 좋아하고 잘 따라서 그날은 조금만 지각하고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계속 원복이 싫다며 우는 아이 때문에 결국 어린이집 선생님과 상담을 하게 됐다. 선생님은 요즘 아이들이 다 예쁜 옷에 관심이 많다면서 그냥 호진이가 원하는 옷을 입혀 보내라고 했다. 덕분에 하늘하늘 망토 달린 엘사 드레스나 반짝반짝 화려한 분홍 드레스도 맘 편히 입혀 보낼 수 있다.
물론 지금도 체육활동을 하는 매주 수요일이나 견학을 가는 날이면 “못생긴” 원복 때문에 호진이는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다. 그래도 견학 가는 날엔 “호진이를 선생님이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 원복을 입어야 해”라고 매번 이야기해주어, 이제는 여름 원복보다 더 “못생긴” 봄가을 원복도 입힐 수 있게 됐다.
한복이니 분홍 드레스니 입히고 벗기느라 실랑이 할 때는 여전히 힘들지만, 원하던 옷을 입고 신나서 춤추고 노래하고 노는 걸 보면 마냥 귀엽고 예쁠 뿐이다. 다 큰 어른도 하고 싶은 걸 못했을 때 기분이 나쁠 텐데 어린아이는 또 어떨까. 그래도 하고 싶은 것을 늘 다 할 수는 없다는 것도 배워야겠지.
방법은 하나다. 공감하고, 대화하고, 기다리는 것. 더디 가도 그 길뿐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충분히 누리고나면 다른 쪽으로도 눈을 돌리지 않을까. 혹 그것이 어른의 눈에는 과도한 집착으로 보일지라도.

최규화는 2014년생, 2016년생 두 딸의 아빠. 딸바보이거나 그냥 바보이거나 둘 중 하나다. 신문사에서 기사 쓰는 일로 용케 먹고산다. 월간 《작은책》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며, 함께 쓴 책으로 《난지도 파소도블레》와 《숨은 노동 찾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