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일단 멈춤!’을 선언했을 때

아이가 ‘일단 멈춤!’을
선언했을 때
아이의 개인차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까지

글. 휘민(시인) | 일러스트. 김지영 | 2018년 1호

2018. 01. 31 393

돌아보면 아이는 늘 자신의 시계에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것이다. 그 세계를 얕잡아보거나 무시할 권한은 어디에도 없다.
내가 엄마라고 해도. 삶에 대한 생각도 속도도 모두 다르니까 사람이다. 그러나 부모는 아이에게 늘 모범답안 같은 모습을 기대한다.
부지불식간에 획일화된 시선으로부터 아이의 개성은 손쉽게 배제당하기 일쑤다.
아이의 개인차와 그 속도를 이해하고 기다리기, 이밖에 모든 것은 아이 몫인 것을•••.

내 아이는 외동이다. 아이에게 동생이 필요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선택을 했다. 아이의 인생 못지않게 중요한 게 내 인생이니까. 마흔, 둘째를 낳을 수 있는 마지노선이라 생각한 그 나이에 나는 박사 과정에 입학했다. 당시 아이는 다섯 살. 그때부터 일과 공부, 육아와 살림을 병행해야 했다.
내가 바빠지니 아이와 부딪히는 일도 잦아졌다. 갈등이 극에 달한 것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였다. 아이는 어느 날, 일곱 살부터 열심히 다니던 피아노 학원을 끊겠다고 했다. 이제 막 체르니에 입문한 때였다. 갑자기 어려워져서 그런가 싶어 이래저래 달래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졸업 논문으로 정신이 없던 엄마에게 아이는 숨 돌릴 틈도 없이 연타를 날렸다. 이번에는 학습지를 그만하겠다는 거였다. 세상에는 하기 싫어도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며 설득했지만 다시 내가 손을 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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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도 의견을 표현할 뿐!

어릴 때 엄마의 어딜 닮았냐고 물으면 ‘뼈’를 닮았다고 해서 큰 웃음을 주었던 아이는 지적 호기심이 왕성한 편이다. 피아노도, 학습지도 스스로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타의에 의해 반복되는 학습이라 느껴지면 가차 없이 ‘NO!’를 선언했다. 게다가 성격은 또 얼마나 느긋한지, 무슨 일이든 계획대로 실행해야 마음이 놓이는 나와 번번이 부딪칠 수밖에. 아이와의 갈등은 더 심해졌고 나의 잔소리도 늘어만 갔다. 그때 깨달았다. 외동이를 키우니 비교 대상이 어린 시절의 내가 된다는 것을. 아, 내가 아이 앞에서 자꾸 옛날 얘기를 하고 있구나!
그때부터 아이를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아이는 무언가를 그리거나 만드는 걸 좋아했다. 1학년 때는 일 년 내내 클레이 수업을 들었다. 방학 때도 수업이 있는 날은 군말 없이 일어나 학교로 뛰어갔다. 그리고 수업이 끝날 때마다 작품을 들고 와 얼마나 힘들게 만들었는지 자랑을 늘어놓았다. 열쇠고리부터 미니 서랍장, 집 모형, 크리스마스 리스까지 클레이로 만들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이 집안을 채워갔다.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은 스케치였다. 저녁에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오면 거실 바닥과 아이의 방에 아이가 그린 모자나 원피스 같은 그림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아이의 세계에서 잘 자라고 있는 것을•••

정말 기막힌 사건도 있었다. 별나게 인형놀이를 좋아하는 아이가 글쎄 미미인형의 머리카락을 싹둑싹둑 잘라놓은 거였다. 네 개의 인형 중 둘의 머리카락을 단발과 커트로 잘라놓았는데 가위질이 서툴러서인지 얼핏 기괴해 보였다. 정서불안? 스트레스로 인한 폭력성? 상담을 받아봐야 하나? 짧은 순간에 온갖 걱정들이 스쳐갔다. 하지만 아이는 태연스레 놀이에 열중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과일과 음식, 접시 같은 소꿉놀이 살림의 대부분은 아이가 클레이로 만든 소품들이었다.
마음을 진정시킨 뒤 아이에게 물었다. 그런데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인형의 머리카락이 모두 같은 색깔에 긴 머리라 개성이 없다는 거였다. 그래서 다른 옷을 입혀도 같은 사람처럼 보인다고. 나의 조바심과 불안을 순간에 날려버린 한 방이었다. 결국 이번에도 내가 손을 들고 말았다. 어쩌면 우매한 나는 아이를 미미인형처럼 키우려고 했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아이는 알고 있었다. 매일 지루하게 반복되는 듯 보이는 인형놀이에서도 얼마든지 새로움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때로는 손수건이 드레스가 되고, 케이크를 묶었던 리본이 멋진 벨트가 되는 아이만의 세계. 그 세계를 얕잡아보거나 무시할 권한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엄마라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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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개인차와 속도 받아들이기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이가 정말 패션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또 충분히 감각과 재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그날 아이의 책장에 놓여 있는, 유치원 때 만든 장래 희망 그림판을 다시 살펴보았다. 서툰 솜씨로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그 밑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맞춤법도 틀리게 이렇게 적어놓았다. ‘패션디자인어’. 그때는 그저 화려하고 멋있어 보여서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며칠 뒤 나는 아이에게 패션의 역사를 알기 쉽게 정리한 만화책 한 권을 선물했다. 초등 1학년이 읽기에는 다소 버거울 수도 있는 그 책을 아이는 옆에 끼고 살았다. 그러더니 어느 날 내게 말했다. 코르셋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킨 코코 샤넬 같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나는 아이의 눈빛에서 진심을 읽었다.
이제 아이는 열 살이 되었다. 그사이 꿈이 잠깐씩 달라졌지만 아직까지는 패션 디자이너에 대한 열망이 식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나는 늘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에게 해준 게 별로 없다. 조금 느려도, 다른 아이들과 달라도 분명 아이에게도 나름의 생각이 있을 거라 그저 믿어주었을 뿐이다. 그리고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인 것뿐이었다.

믿고, 지켜보며, 기다리며

그사이 아이의 자존감도 몰라보게 좋아졌다. 가끔 내가 너무 관대했나 싶기도 하지만 나처럼 예민하지 않고 긍정 에너지가 철철 넘치는 아이가 참 사랑스럽다. 2학년이 되고서는 피아노 학원도 다시 다니고 있다. 점점 어려워지는데도 오히려 피아노에 푹 빠져 있는 눈치다. 이 기세를 몰아 겨울방학 때는 수학 공부를 좀 시켜볼까 하고 얕은꾀를 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학원을 거부했다. 일단 엄마랑 공부를 해보고 안 되면 그때 가겠다는 거다. 공부라면 짜증부터 내던 아이였는데 이 정도면 엄청난 발전인 셈이다.
생각도 삶에 대한 속도도 모두 다르니까 사람이다. 우리 모두 다르다는 고유성, 그 차이가 곧 한 사람의 개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늘 모범답안 같은 모습을 보여주길 원한다. 다 욕심이다. 정답이 없는 게 삶인데 우리 사회는 늘 수치로 환산된 평균치의 잣대를 들이댄다. 그 획일화된 시선으로부터 ‘개인차’는 손쉽게 배제당하기 일쑤다. 부모 세대와 달리 우리 아이들은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를 살게 될 것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정답 찾는 기술만 강요해서야 될까. 내 생각에 부모가 할 일은 두 가지밖에 없다.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는 일, 그리고 아이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지켜봐주는 일. 이 두 가지를 제외한 일들은 모두 아이 몫이다. 아이는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지구별을 탐색 중인 여행자이니까.

휘민은 장난기 많은 딸아이와 매일 아웅다웅하지만 평생 아이의 친구로 남고 싶은, 꿈 많은 엄마다. 시인이자 동화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숭실사이버대, 동국대, 한국교통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시집 『생일 꽃바구니』와 동시‧동화 모음집 《뒤뚱뒤뚱》(공저), 동시 선집 《전봇대는 혼자다》(공저) 등을 펴냈으며, 곧 두 번째 시집과 동화집을 선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