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분야에서 혁신하라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분야에서 혁신하라온라인 정육점 '정육각' 대표 김재연

글. 김수영 | 사진. 김선재(페니레인스튜디오) | 2017년 6호

2017. 11. 15 156

카이스트를 나온 청년이 미국 유학도 포기하고 축산업 분야에 창업한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물음표를 던졌다.
공부만 하던 학생이 아무도 관심이 없는 거칠고 험한 분야를 과연? 그러나 순식간에 업계를 흔들어놓으며 당당히 주목받는 스타트업으로
키워냈다. 온라인 정육점 ‘정육각’을 설립한 김재연 대표의 이야기다.

새로운 시각으로 틀을 깨다

도축 후 1~4일, 맛의 골든타임을 지킨  ‘초신선’  돼지고기를 온라인으로 판매하겠다는 그의 사업 아이디어는 혁신이었다. 많은 축산업계 종사자들이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저었고, 지금도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이들이 많다.
“기존 시스템으로는 도축 후 최장 45일까지 고기를 팔아요. 그런데 저희가 개발한 시스템으로 4일 안에 모든 재고를 처리한다니까 믿을 수 없다는 것이죠.”
김재연 정육각 대표는 기존의 시스템에 갇힌 사람들이 볼 수 없었던, 바깥의 새로운 시각으로 축산업이라는 생소한 분야에 접근했다. 빈 점포를 빌려 작업장을 차려놓고 8개월간 직접 고기를 썰어 포장해가며 개선점을 파악했고 노하우를 체득했다. 이렇게 개발한 기술로 공장을 세우자 내부 시스템을 베껴 가려는 축산업자들이 주변을 기웃거렸다. 하지만 핫 소프트웨어는 보고도 흉내 낼 수가 없었다. 정육각의 홈페이지와 콘셉트만 비슷하게 도용한 업체들도 정작 노하우를 몰라 실패했다.
“혁신이라는 게 기존의 시스템을 깨뜨렸을 때 일어나는 거잖아요. 그러니 그 안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반발하는 게 당연하죠. 더 많이 반발할수록 더 잘하고 있다는 뜻이죠.”
기존의 유통구조와 이익구조상 소비자가 시중에서 신선한 재료를 구하기란 현실적으로 힘들다. 신선하다고 광고하지만 실제 이력을 조회해보면 유통 기간이 꽤 긴 경우가 많다. 돼지고기는 7일쯤 지나면 냄새가 나고 맛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정육각의 모토는 돼지고기가 제일 맛있는 도축 후 3~5일째에 소비자의 식탁에 올리자는 것!
“눈으로 직접 보고 고르진 못하지만 매번 균일한 품질의 좋은 제품이 배달되니까 믿고 주문하시는 것 같아요. 돼지고기의 반응이 좋아서 지금은 당일 도계 닭과 당일 산란 달걀까지 판매하고 있고, 조만간 소고기까지 상품군을 확대할 계획입니다.”
2016년 2월 설립 이후 한 달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설 만큼 정육각의 성장 속도는 가팔랐다. 총 10억 원의 투자금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으며, 임직원만 20명을 둔 주목받는 스타트업으로 발돋움해 치열한 다음 라운드를 준비하고 있다.

수학과 창업의 공통점

김재연 대표의 스물여섯 삶의 이력은 화려하다. 중학교 조기 졸업 후 과학영재학교 진학, 카이스트에서 응용수학 전공,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 유학길을 앞둔 선망의 스펙을 가졌다.
“2015년 12월경 출국 날짜까지 정해지고 8개월의 시간이 남았어요. 그 동안 재미있는 걸 한번 해보자 싶었죠. 워낙 먹는 것을 좋아하고 그 중에서도 돼지고기를 제일 좋아해서 맛집을 찾아 다녔는데, 도축 후 유통 기간에 따라 맛의 차이가 확연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도축장에 직접 가서 고기를 사 먹으면서 창업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어떤 선택을 할 때 먼 미래보다는 당장 재미있는 것을 하자는 쪽에 초점을 맞추는 편인데, 생각해보니 유학 후의 진로보다는 이 길이 더 재미있겠다 싶었어요.”
고등학교 수학 교사였던 어머니 덕에 어렸을 때 일찍 수학을 접하고 흥미를 느껴 공부도 잘하게 된 것 같다는 그는 ‘엄밀히 말하면 수학을 좋아했다기보다는 문제 해결에 재미를 느낀 것 같다’며 탐험가적인 기질을 드러냈다.
“창업도 마찬가지죠. 한걸음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풀어야 할 문제들이 있어요. 문제가 너무 많아서 골라서 풀어야 할 정도죠. 정의되지 않은 문제들도 있고요. 저는 그걸 찾아서 해결하는 게 재미있습니다.”
워낙 거칠고 힘든 업종이라 몇 개월 하다가 그만두겠지 하던 그의 부모도 매출액과 소비자 반응 등 성과를 보자 차츰 마음을 열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준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한다.
“축산이라는 업종이 보수적인 어른들 세계에서는 조금 부끄러울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좋은 길을 마다하고 이런 길을 택한 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말도 들었죠. 저희 부모님도 그러셨을 텐데 어디 나가시기만 하면 주문을 받아 오시는 거예요. 매출이 늘어서 이제는 그러실 필요가 없다고 말씀드려도 여전히 그러세요. 이왕 할 바에는 정말 열심히 해 보라고 응원해주신 게 사업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이 되었어요.”

꿈의 범위를 넓히면 성공 확률도 높아진다

김재연 대표는 다시 창업을 한다 해도 축산업을 택하겠다는 신념이 확고하다. 오랫동안 변화가 없던 시장이라서 가치 상승의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경쟁자가 별로 없다는 것이 제일 좋았어요. IT분야의 친구들은 인공지능이나 전기자동차같이 멋있어 보이는 분야에만 관심이 있죠. 기성세대나 미디어에서 혁신 산업이라고 말하며 그렇게 제한해버린 면이 없지 않아요. 범위를 넓혀 보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한데 그걸 아예 차단해버리는 거죠.”
그는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꿈의 범위가 너무 좁다고 생각한다. 많은 돈을 벌거나 그럴 듯한 직업을 갖는 것쯤으로 한정하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낡은 가치관으로 굳어져온 교육 환경이 미래 세대의 성공 가능성까지 닫아버리는 것은 아닐까.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곳에 혁신과 성공의 열쇠가 숨어 있다는 것을 그는 증명해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