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네가 진짜 원하는 걸 깨닫지 못했네”

“미안해! 네가 진짜
원하는 걸 깨닫지 못했네”

글. 강아름 (한국일보 경제부 기자), 정지선 (제약회사 홍보실) | 일러스트. 김지영 | 2017년 6호

2017. 11. 15 458

질적 시간과 말랑카우가 나를 살리다 – 강아름

‘떼’쓰는 아이, 번역기 돌리면 “내 말 좀 들어줘”가 아닐까

“아흔 여덟, 아흔 아홉, 백! 엄마, 나 이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똑똑해졌는데 왜 우주비행사가 안 되지?”
다섯 살짜리 첫째 아들 율이는 요즘 우주에 빠져 있다. 로켓과 착륙선, 행성 같은 어려운 용어도 집요하게 묻고 이해하려 애쓴다. 손에 꼽힐 만큼 공부를 잘해야 우주비행사가 될 수 있다고 하니 한글, 수학 공부도 스스로 할 정도다. 덕분에 “율이 엄마는 걱정 없겠어, 저렇게 알아서 잘 하니”라고 칭찬도 듣는다. 이렇게 떼부림과는 한참 거리가 멀어 보이는 우리 범생이에게도 흑역사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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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 율이의 ‘8개월’ 공식

율이가 ‘떼’의 본색을 드러낸 건 생후 6개월쯤. 낯가림과 분리불안이 심해지더니 갑자기 카시트에 앉기를 거부했다. ‘아이가 울어도 계속 앉히면 익숙해진다’는 육아 서적의 조언을 믿고 한 시간 넘게 울려봤지만 통하지 않았다. 되레 그 이후 앉기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율이는 13개월까지 장장 8개월 동안 모든 앉기를 거부하며 떼를 부렸다. 복수라도 하듯 카시트, 유모차, 범보의자, 식탁의자, 장난감 의자 등 혼자 앉는 것은 모조리 거부했다. 나와 떨어지면 울고 떼를 쓰는 통에 어딜 가든 나는 아기띠로 율이를 안고 업어야 했다.
어린이집 적응에도 딱 8개월 걸렸다. 율이는 30개월에 접어든 지난해 4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아침마다 가기 싫다며 울었다. 어린이집에서 보낸 동영상을 보면 나는 늘 마음이 아팠다. 체육 같은 활동 시간에 율이만 맨 뒤에 앉아서 무표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친구들 모두 방방 뛰고, 웃으면서 장난치는 모습이 영상을 꽉 채우곤 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율이를 찾으려면 ‘일시 정지’를 누르고 친구들의 가랑이 사이며, 영상 귀퉁이를 살펴야 했다.

육아 참고서를 버리고, 내 아이 성향 분석부터

이런 혹독한 시간을 거치는 동안 나만의 내공이 생겼다. 육아 책과 인터넷 정보에 의지하기 전에 내 아이를 공부하게 된 것이다. 내가 깨달은 율이의 기질은 ①적응 시간이 길다 ②적응기 동안 활동에 참여하지 않지만, 딴짓 하지 않고 주변 인물의 행동과 대화를 관찰한다 ③적응이 끝나면 가르친 것을 완벽하게 하려고 하고 제일 잘 하고 싶어한다 등으로 정리되었다. 이런 성향을 토대로 ‘다름’(친구와 다른 성향)과 ‘틀림’(잘못된 행동)을 구분해서 훈육하기 시작하자 율이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가령 율이는 카시트에 앉기 시작한 14개월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안전벨트를 하지 않으면 차에 시동도 못 걸게 한다. 택시를 타면 뒷좌석에 올라타자마자 어른용 안전벨트를 스스로 채운다. 또 율이에게 “어린이집에서 율동하기 싫으면 구경만 하고 와”라고 꾸준히 일러줬더니, 어린이집에서는 목석같던 아이가 집에서는 큰 변화를 보였다. 집에 오면 체육 선생님, 담임 선생님 흉내(“○○야, 여기 봐야지!”, “○○은 비행기 팔 하고 폴짝 뛰어보렴” 같은 멘트도 섞어가면서 말이다)를 내면서 그날 배운 율동과 노래 등을 복습했다. 그럴 때면 나와 남편, 아이들을 돌봐주시는 친정 어머니까지 모두 방청객이 되어 물개박수를 치곤했다. 율이는 어느새 어린이집에서 가장 적극적인 아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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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엄마랑 놀고 싶어”

율이 전문가가 다 됐다고 생각할 즈음, 사건이 터졌다. 지난해 6월 둘째 아들을 낳고 육아휴직을 한 후 올해 8월 복귀했을 때다. 한 달 만에 율이는 다시 떼쟁이로 돌아갔다. 하원 후 놀이터에서도 친구들과 놀지 않고 그 주변만 맴돌았다. 추석을 앞둔 9월 말에는 어린이집 선생님으로부터 “율이가 친구를 때렸어요”라는 전화까지 받았다. 폭력과는 거리가 멀었던 율이가 친구를 때렸다는 얘기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엄마도 처음, 워킹맘도 처음이라 이렇게 늘 한계와 마주한다. 같은 다섯 살이라도 휴직 때의 율이와 복직 후의 율이는 다르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다시 율이를 공부했다. 이후 나는 율이의 의견을 반영해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먼저 틈나는 대로 안고 뽀뽀하는 등 율이와 ‘스킨십’을 했다. 둘째로 한 주의 일정을 율이에게 미리 알려주었다. “내일 야근이야. 율이가 먼저 자고 있으면 엄마가 돌아와서 율이 귀에 대고 ‘엄마 왔어’라고 꼭 말할게”라는 식으로 말이다. 세 번째로 자기 전에 깊은 대화를 나누는 ‘질적 시간’을 가졌다. 율이는 그날 가장 즐거웠던 일, 속상했던 일 등을 시시콜콜 얘기했다. 네 번째는 ‘보상’인데, 강력한 효과가 있었다. 나는 군것질에 엄격한 편이라 지금껏 율이에게 사탕, 초콜릿, 젤리는 사준 적이 없다. 율이로서는 달달한 ‘당’이 늘 고플 터, 여기에서 묘안을 짜냈다. 요즘 나는 출근길에 “율아, 기자실에 말랑카우가 있더라. 퇴근하면서 2개 가져올게”라고 말을 한다. 내가 깜빡 잊어버리면 율이가 먼저 “엄마, 말랑카우 가져오세요”라고 출근 인사를 건넨다. 퇴근 후 율이에게 말랑카우를 주면 율이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한다. 출근하는 날만 율이에게 돌아가는 보상이다. 이렇게 원칙과 작은 보상을 곁들인 지 두 달쯤 지났다. 율이는 안정감을 찾고 활발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글을 쓰면서 ‘떼’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봤다. ‘부당한 요구나 청을 들어 달라고 고집하는 것’이란다. 그렇다면 자녀들에게 떼를 쓴다고 하는 건 틀린 표현 같다. “내 얘기를 들어주세요, 엄마랑 놀고 싶어요, 표현법이 서툰 것뿐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강아름은 현재 한국일보 경제부 기자이자 49개월, 17개월 아들 둘과 함께 성장하고 있는 엄마다. 부부 공동육아를 지향하지만 실상은 ‘품앗이 육아’를 빙자해 친정 어머니,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으며 치열하게 살고 있는 워킹맘 중 한 명이다.



아이가 원하는 엄마의 가장 큰 보상 – 정지선

벌써 직장 생활 10년을 훌쩍 넘긴 워킹맘이지만, 극복하기 힘든 문제들은 늘 산재해 있고 마음은 계속 어지럽다. 이게 흔히들 말하는 오춘기인가 싶다. 출산휴가 3개월만 쉬고 복귀했던 나는 회사에서 모든 일을 잘 해내고 싶었다. 육아는 나하고 어울리지 않는 불편하고 힘든 과업이라 단정 짓고 회사 일에 더욱 매달렸던 것 같다. “여자라서, 워킹맘이라 안 돼”라는 편견에 보란 듯이 반증하고 싶었던 것은 욕심이었을까. 육아는 남편에게 미루고 열심히 일했지만, 어느 순간 성취감은커녕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날이 갈수록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마음이 어지러우니 몸도 따라 아플 지경이었다. 회사 일에다 아이 키우고 살림까지 하면서 정신없이 바쁜데도 자부심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회의와 자책뿐이라니. 무언가 한참 잘못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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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하고 미안한 마음에・・・

첫째아이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몸이 약해 입원이 잦았다. 아이가 아프거나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그렇게 만든 나쁜 엄마라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일하느라 못 챙겨서 아픈 건 아닐까?’, ‘다른 전업 주부들은 정말 헌신적으로 잘 돌봐줄 텐데, 내 아이가 다른 아이에 비해 모든 면에서 불리하지는 않을까?’
불안하고 미안한 마음에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다 해주고 싶었다. 함께 있어주지 못해서, 바쁘다는 이유로 챙겨주지 못하니 물질로라도 보상해줘야 한다고, 그것이 돈 버는 엄마의 특권이라고 생각했다. 꽤 오랜 시간 나를 죄책감과 번뇌에 빠지게 만들었던 첫째아이는 어느덧 아홉 살이 되었고, 비교적 건강하고 무탈하게 초등학교 2학년을 보내는 중이다.
“영어 단어 시험 다 맞으면 뭐 사줄까?”
“줄넘기 챌린지 금상 받아오면 뭐 해줄까?”
“○○ 시까지 숙제 다 하고 방 정리 다하면 원하는 걸 사줄게.”
엄마가 요구할 때마다 아이는 엄마를 안심시키듯 필요한 소소한 것들을 나열하곤 했다. 괜찮게 크고 있다고 자부하던 어느 날, 아이의 건강에 다시 문제가 생겼다. 입 속 침샘이 막혀 부풀어 오르는 병인 ‘하마종’으로 침샘 제거 수술을 하게 된 것이다. 돌이켜보니 무심코 흘려보냈던 전조 증상들이 있었다. 입 안에서 냄새가 나면 양치질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타박했고, 혀 부분이 아프다고 이야기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 대학병원에서 전신마취 수술을 끝내고 꽤나 의연하게 누워 있던 아이는 머리가 크고 나선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엄마가 회사로 돌아가는 것에 불편함을 드러냈다. 문득 어디선가 스쳐 읽었던 글이 떠올랐다. ‘계속된 물질 보상은 아이가 ‘상실감 대용’으로 인식하게 되니 아이에게 물질적 보상을 하기보다는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와 시간을 보내며 교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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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보상은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

아이에게 진정으로 필요했던 건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었다. 짧은 동안이라도 오롯이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고 이야기를 나누며 교감하는 시간! 곧 있을 회사의 행사 준비로 한창 바쁜 때였지만, 나는 그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휴가를 냈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누워 반 친구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선생님에게 어떻게 하다가 꿀밤을 먹었는지, 가장 친한 친구를 언제 초대할지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나는 이제 불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더는 아이에게 보상에 대해 묻지 않는다. 대신 반드시 아이의 공부를 봐주고 모르는 것을 설명해주며 하루 동안의 사건 사고를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다. 물론 역시 예쁘고 착하고 똘똘한 내 딸이라는, 엄마를 닮아 머리가 매우 좋은 것 같다는 칭찬은 덤이다. 퇴근 후 가지는 그 은밀한(?) 시간은 서로에게 긍정적인 시너지를 내는 것 같다. 아이는 스스로를 챙길 줄 아는 자신감 있는 어린이로 자라고 있으며, 나 역시도 엄마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를 그런대로 견디고 있는 것 같으니 말이다.

미소를 머금고 아이를 바라본다

아이가 한 뼘씩 크는 모습은 타는 목을 적셔주는 샘물과 같다. 아프고 나서 또 한 뼘 훌쩍 큰 아이는 다행히도 일하는 엄마를 더 잘 이해하고 좋아해준다. 워킹맘과 전업주부의 사이에서 진지하게 고민할 때에도 아이는 “엄마는 일을 해야 더 행복할 것”이라는 명쾌한 답을 내놓아 내심 놀라게 만든 적이 있다. 오춘기의 어디선가에서 육아와 일의 병행으로 여전히 갈등중인 나는 소망한다. 가족을 통해 충만한 행복을 누리고, 일을 통해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자존감으로 당당할 수 있기를.
바람따라 흩날리는 눈발 하나에도 까르르 웃는 아이들,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을 관객처럼 바라본다. 소리 내어 웃는 그 웃음이 지나치게 크다며 나무라지만, 어느새 만면에 미소를 머금는다. 티 없이 맑은 아이들을 보고 있는 것. 행복을 발견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더 이상 무슨 보상을 바라겠는가, 그저 행복하면 될 일이다.

정지선은 제약회사의 사내 커뮤니케이션 및 출판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워킹맘이다. 초등학교 2학년 첫째딸, 여섯 살 둘째딸에게 평생 좋은 친구로서, 독립적이고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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