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한 크리에이티브입니다

나는 행복한 크리에이티브입니다네이버 인큐베이션 스튜디오 리더 원성준

글. 김지원 | 사진. 김선재(페니레인스튜디오) | 2017년 5호

2017. 09. 13 348

스티브 잡스는 IT 역사에 있어 위대한 사람으로 기억되지만, 개인적인 흠결 또한 자주 회자되고 스스로 인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늘 ‘딴’ 곳을 향해 있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옳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원성준 리더(네이버 인큐베이션 스튜디오)는 <회사에서 티 나게 딴짓하기>라는 책에서 창의성이 어떤 식으로 발현되는지 말하고 있다. 그의 표현을 응용하자면 스티브 잡스는 ‘딴짓’으로 성공한 사람이다.

스스로 발굴하고 실현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인큐베이션 스튜디오는 일하는 방식이 좀 다르다. 스스로 업무를 ‘발굴하고 디자인하고 실현하는’ 것이다. 원성준은 이곳을 이끄는 리더이다.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네이버 본사 그린팩토리는 자율과 창의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무엇을 시도해도 허락될 것 같은 분위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편안한 대화를 나눈다. 원성준 리더는 그 속에서 자신의 도전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삼성전자와 마이크로소프트에서의 경험, 그리고 네이버에서 내딛은 발걸음 모두 새로운 시도입니다. 인큐베이션 스튜디오에서는 정해진 업무를 지시받기보다, 역으로 과제를 제안하는 방식으로 많은 일을 진행합니다. 의미있는 과제를 자체적으로 발굴하지요. 이런 방식이 그동안 제가 해왔던 ‘딴짓’과 통하는 점이 있어서 즐겁습니다.”
그가 말하는 ‘딴짓’은 속뜻이 보다 깊다. 주어진 일 외에 공동 미션에 걸맞은 새로운 접근과 시도를 그는 그렇게 표현한다.

‘딴짓’은 목적지로 가는 즐거운 길

그는 아홉 살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대학원까지 졸업했다. 스스로 선택한 길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나갔다고 말한다. 그림 그리기와 레고 조립을 좋아하던 소년은 건축가를 꿈꿨다. 반면에 부모님은 엔지니어링 쪽을 권했고, 한 지인이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레고 블록 쌓기와 비슷하니 도전해보라고 조언해주었다. 설득력이 있었다.
“모든 상황이 저를 새로운 길로 이끌었습니다. 아무런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방향이 생긴 거죠. 한 번도 프로그래밍을 해본 적이 없지만 저는 도전하기로 했어요.”
물에 빗대어 표현하기를 좋아한다는 그는 설명을 보탰다. 평평한 땅에 물을 떨어뜨리면 그대로 고이거나 스며들어버릴 텐데, 땅에 경사가 있고 장애물이 있으면 흐르면서 부딪치고, 때로는 돌아가는 방향성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주변의 조언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시도한 도전이 그의 ‘딴짓’의 시작이었다. 한국의 대학입시제도 중 수시와 같은 미국의 ‘얼리 디시전(Early Decision)’을 통해 덜컥 카네기멜론대학 컴퓨터공학 전공에 합격했다.
“막상 입학은 했지만 막막하고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신입생 100명 가운데 코딩 경험조차 없는 사람은 저를 포함해 4~5명이었으니까요. 16살에 조기 입학한 우등생을 보면서 기가 죽기도 했죠. 하지만 곧 비교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어요. 경쟁자라기보다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동료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학교생활이 더 즐거워졌어요. 학점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입학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림을 그리듯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디자인’을 향한 욕망이 채워지지 않았다. 마침 복수 전공으로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 과정을 수강할 수 있었다. HCI는 사람과 컴퓨터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분야로, 컴퓨터 OS나, 스마트폰의 UX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과정은 엔지니어링과 디자인, 심리학, 경영학이 혼합된 커리큘럼이라 디자인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이때 만난 새로운 친구와는 삶의 이력과 관심사가 비슷해 금세 의기투합했다.
“둘 다 공학 전공이면서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어요. 프로그램에 디자인을 더해보자는 뜻이 맞아 전공 외에 ‘딴짓’을 많이 했어요. 교수님께서는 우리의 결과물을 보고 논문으로 정리해도 좋겠다고 조언해 주셨고요.” 두 사람과 교수의 공동 논문은 학회 발표로 이어졌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친구는 애플에 입사했고 원성준 리더도 자신만의 길을 찾았다.

디자이너를 넘어 크리에이티브로!

대학원을 졸업할 즈음인 2000년대 후반, 원성준 리더는 고민에 빠졌다. UX와 HCI 분야의 일을 이어가고 싶었고, 스마트폰의 등장과 모바일 시장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삼성전자와 노키아에 관심이 쏠렸다. 그는 더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고, 여러 디자이너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기회에 도전하기로 했다.
“삼성전자에 입사해서 ‘S뷰 커버’의 디자인 개발과 여러 컨슈머 제품의 UX 개발에 관여했어요. 무선사업부 디자인팀에서 한 일은 제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하지만 4~5년차가 되던 무렵에 크리에이티브로서 큰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삼성이란 곳이 장점도 많고 저와 잘 맞다고 느꼈지만, 어느 조직이든 고유의 시각과 프로세스가 있잖아요. 계속 같은 방식으로 일하면 제 시각이 하나로 굳어질 것만 같았어요. 그러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느꼈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그 즈음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새로운 제안을 해왔다. 디자이너로서가 아니라 기획자, 즉 프로그램 매니저의 역할이었다. 또다시 그는 새로운 도전을 택했고, 디자이너를 넘어 보다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조직 내 서로 다른 구성원들의 아이디어와 디자인을 어떻게 조율하고 구체적인 사업으로 추진하는지 배울 수 있는 값진 경험이었다.
그런 그에게 네이버는 처음부터 정해진 역할을 제안하지는 않았다. 인큐베이션 스튜디오라는 명칭부터 구성원과 업무에 이

르기까지 모든 것을 입사한 후에 하나하나 정립해왔다고 한다. 크리에이티브로서 네이버에 합류함으로써 원성준 리더는 이전과는 또 다른 차원의 ‘딴짓’을 맘껏 펼쳐볼 수 있는 공인된 플레이그라운드를 얻은 셈이다.

나만의 유니크한 솔루션으로

인큐베이션 스튜디오에서의 모든 프로젝트는 하나하나 몸소 부딪쳐 해결해야 한다. 그를 포함해 3명으로 시작한 팀은 매번 회사를 상대로 펀딩하듯이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제안하는 과정을 거쳐 현재 구성원 수가 9명까지 늘어났다. 4개월에 걸친 작업의 첫 성과로 ‘할 일(To Do)’ 앱인 ‘타르트(http://tarte.io)’를 선보였고, 사내 베타테스트를 거쳐 지금 플레이스토어에서 오픈 베타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가 만나는 난관은 좌절하고 꿇어앉아 기대는 벽이 아닙니다. 풀어야 할 문제를 찾는 기회죠. 그런 면에서 스튜디오 구성원 각자가 지금의 역할에 국한해서 생각하지 않고 크리에이티브로서 보다 큰 그림을 보고 발걸음을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원성준 리더가 바라보는 미래는 요즘 너무나 흔히 접하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로 단순히 설명하기 어렵다. 조금이라도 비슷한 표현을 찾자면 ‘누구나 자신만의 솔루션을 마음껏 제시할 수 있는 시대’라고 하겠다. 그런 시대를 여는 데 원성준 리더는 자신의 경험이 도움이 되리라 여긴다.
“크리에이티브는 흥미롭고 의미가 있는 문제를 풀 수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주어지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딴짓’들을 통해서 자발적으로 새로운 문제들을 찾아보고, 역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영역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원성준 리더는 첨단 사업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 무조건 실리콘밸리로 가야 한다는 생각은 선입견이라고 조언한다.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기만 한다면 기회는 여기에도 얼마든지 열려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