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시간이 필요해. 네가 예쁜 그만큼!

엄마도 시간이 필요해.
네가 예쁜 그만큼!

글. 양선아(한겨례 기자), 고윤지(회사원, 독서코칭가) | 일러스트. 김지영 | 2017년 5호

2017. 09. 13 932

식구들 눈치는 보여도, 회식이라면 콜! – 양선아

꼭 가고 싶은 회식, 죽어도 가기 싫은 회식, 죽지 못해 가는 회식…. 입사 이후 시기별로 ‘회식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는 달랐고,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따라 회식 장소에 머무르는 시간도 달랐다. 초년 기자 시절에는 어떻게든 이 험난한 ‘기자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회식엔 반드시 참석했다. 술자리에서 선배들 말 한 마디라도 더 들어야 했고, 취재원과는 무조건 친해져 어떤 정보라도 들으려 했다.
차차 시간이 흐르면서 대한민국 여성이라면 술자리에서 누구나 한번쯤 겪을 만한 성차별적 발언에 기분이 상하고, 술을 핑계로 한 언어폭력 등을 겪었다. 술자리에 간다고 더 좋은 기사를 쓰는 것도 아니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마셨던 폭탄주로 내 간 수치만 나빠진다는 사실을 알아갈 즈음, 나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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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 모두 돌이 될 때까지 육아 휴직도 하고 모유 수유를 했다. 당연히 일 년 동안 맥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다. 폭탄주로 몸을 망치는 것도 싫고 회식도 피하고 싶었던 나였다. 그런데 모유 수유를 1년 하니 그 회식 시간이 얼마나 그립던지. 말 못하는 아이와 단둘이 앉아 눈 맞추고 노래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그 시간은 지독한 외로움의 시간이기도 했다.
둘째 아이를 낳고는 첫째 때의 경험을 토대로 집에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았다. 급기야 3살, 1살 두 아이를 데리고 베이비시터와 남편까지 대동하고 육아휴직 중 회식 자리에 참석하는 대담함을 발휘했다. 그날은 부서 회식이 특별히 서울 상암동 하늘공원 캠핑장에서 있던 날이었다.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며 고기도 구우며 야외 회식을 하기로 했단다.
“여보, 우리 회사 같은 회사도 없는 거 알지? 육아 휴직도 눈치 없이 할 수 있고~. 복귀 전에 미리 선배들한테 눈도장도 찍으러 가야지. 가자~, 애들도 하늘공원 가보고 좋잖아.”
수유도 끝내고 복귀 직전이었다. 남편도 설득당했다. 맹꽁이 전기차를 타고 올라가는 것도 신나고, 노을을 바라보는 것도 좋았다. 아이들은 탁 트인 공간에서 뛰놀고, 나는 모처럼 부서 사람들과 술을 주거니받거니 했다. 그날은 어찌나 술이 달콤하던지 선배들이 주는 대로 홀짝홀짝 잘도 받아마셨다.

육아 휴직이 끝나고 복직한 뒤로 회식 시간이 무조건 좋았다. 서울을 떠나는 부서 엠티라면 얼씨구나 하며 참여했다. 아이들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사랑스럽지만, 딱 그만큼 아이를 낳기 전 자유로운 나로 돌아가고 싶기도 했다. 일과 또 다른 일(육아)을 오가는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듯한 워킹맘의 일상에서, 회식과 엠티, 출장은 오히려 생활의 윤활유였다. 남편은 부서 회식 시간이라면 아내가 늦게 들어와도 용인했고, 엄마가 보고 싶은 아이들도 회식이라면 일의 연장이라 생각하고 덜 보챘다.
‘아이가 달라졌어요’가 아니라 ‘엄마 되니 달라졌어요’다. 팀에서 총무를 맡고 있는 나는 회식 날 어디에서 어떻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지 계획을 짠다. 음식문화 담당 기자에게 맛집을 소개받아 예약을 한다. 내 돈 주고 못 먹는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다. 어떤 날은 술만 먹는 회식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회식을 제안해 영화도 봤다. 총무 권한을 마음대로 활용했다. 내가 발동이 걸리지 않으면 회식 자리도 만들어지지 않아, 부서 사람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는 날로 그러나 꼭 내가 참석할 수 있는 날로 날짜를 정했다. 만날 밥만 먹고 사는 사람에게 별식과 같은 맛을 주는 시간, 회식은 내게 그런 의미다.
아이들이 조금씩 커가면서 팀 회식 자리 외에도 가끔 친한 선후배와 함께하는 술자리가 만들어졌다. 일과 육아의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워킹맘들끼리 수다를 푸는 자리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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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그날은 남편과 아이들에게 일찍 퇴근하겠다고 약속한 날이었다. ‘딱 한 잔’이라는 선후배의 말에 정말 딱 한 잔 마시고 일어서려고 따라나섰다. 그런데 갑자기 심각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누군가 남편과의 갈등으로 이혼 이야기까지 꺼낸 것. 하소연도 들어주고, 그래도 이혼만은 아니라며 달래다 보니 어느새 밤 12시가 넘었다. 남편에게 늦는다고 연락할 틈도 없이.
콩닥콩닥, 제발 남편이 자고 있기를 바라며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삐삐삐삐~. 술에 취해 잘못 눌렀나? 두 번 세 번 눌러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 아뿔싸! 화가 난 남편이 현관 비밀 번호를 바꿔버렸다.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 싹싹 빌고 다시는 “약속을 어기지 않겠다”고 약속한 뒤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내 몸 망가뜨리며 술을 마시지는 않겠다던 여자가 이제는 남편과 아이들 눈치 보며 어떻게든 회사 회식부터 선후배 회식, 동네 엄마 회식까지 두루두루 다닌다. 그러나 과유불급! 자칫 부부싸움으로 번지거나 아이들의 주요 일정을 놓칠 수 있고, 급기야 내 몸이 힘들어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엄마와 열정 사이를 오가니, 한 템포 쉬어주는 시간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양선아는 한겨레신문 임신출산육아 웹진 ‘베이비트리’를 담당하고 있다. 보육·육아 관련 기사를 쓰면서 육아서 [나는 일하는 엄마다](공저)와 [고마워, 내 아이가 되어줘서](공저)를 쓰고, 초등학생을 위한 [자존감은 나의 힘]을 썼다. 초등학교 3학년, 1학년 두 아이를 키우며 부모와 아이 모두 행복한 육아를 추구한다.



너와 눈 마주치는 시간 3분 – 고윤지

나는 4살 남자아이가 있는 워킹맘이다. 아이가 8개월에 접어들 무렵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일을 시작했다. 너무 어릴 때부터 어린이집에 보낸 게 미안했지만, 집에서 살림할 수 있는 성격이 되지 못해 빨리 일을 시작하고 싶었다. 그렇게 각자의 생활을 시작한 지 3년째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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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아이의 경우 일찍부터 어린이집에 다닌 것치고 애착관계 형성이 잘 되어 있는 편이다. 평일이건 주말이건 쉬는 날이 거의 없는 엄마를 둔 아이답지 않게 보채는 일 없이 혼자의 시간을 잘 이겨내곤 한다. 두 돌 전부터 단둘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서울을 오가며 강의를 듣고 모임을 다녔을 정도로 엄마의 시간에 협조를 많이 해주는 아이다.

아이를 데리고 강연을 들으러 다니면서 주변 선생님들께 아이와의 애착관계가 잘 형성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번 글을 쓰면서 그 이유를 차근히 생각해보았는데, 아마도 퇴근 후에 아이와 눈 마주치는 3분의 시간 덕분이 아닐까 싶다.

나는 퇴근하고 아이를 보면, 제일 먼저 꼭 끌어안고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한다. 오늘 어린이집에서 뭘 했는지, 어떤 친구와 놀았는지, 선생님과는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기분은 어땠는지, 혹은 엄마는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음식을 먹었고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그렇게 서로 떨어져 있던 시간의 일을 대화로 공유하곤 했다. 아이가 아직 말을 트지 못했을 때에도 꼭 끌어안고 눈을 마주치며 혼잣말로 열심히 말을 걸곤 했다.

많은 시간을 그렇게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퇴근 후 3분의 시간은 내 아이와 눈 마주치는 시간으로 꼭 활용하고자 다짐해서 매일 실천하고 있다. 사실 그 외에는 피곤하고 지쳐서 아이가 말을 걸 때마다 일일이 대꾸하기 힘들 때가 많다. 그렇지만 그동안 쌓아온 3분이라는 시간들이 지금의 나와 아이의 관계를 만들어주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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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말도 많아지고 생각도 커져서 시도때도 없이 옆에서 참견을 한다. 저녁 식사 준비를 할 때나 설거지를 할 때 항상 옆에서 함께 하길 바란다. 그럴 땐 무작정 아이를 밀쳐내지 않고 받아들이는 편이다. 식탁에 물컵이나 수저를 놓으며 함께 식사 준비를 하거나, 같이 그릇을 정리하는 식으로 말이다.

대신 집안일이 모두 끝난 후에는 엄마의 휴식 시간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한다. 아이에게 허락했던 내 시간만큼 나 또한 내 시간을 아이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엄마는 너의 모든 요구를 들어줄 의무가 없다.’는 것을 항상 상기시켜주었다. 엄마와 아빠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온 것이지 놀다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일하고 와서 힘드니까 쉬어야 또 내일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못 알아듣더라도 꼭 설명해주곤 했다. 아이라고 무조건 다 맞춰주는 것은 아이를 위해서도, 우리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퇴근 후에 잠깐 동안 아이에게 집중하는 것이 더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아이에 대한 측은지심과 사랑은 넘치지만 그 이상으로 나의 삶과 휴식도 중요하기 때문에 그 균형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워킹맘들이 힘들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미안함, 더 많은 사랑을 주지 못한 미안함 때문이니까 말이다. 미안한 마음이 당연해지는 순간 아이도, 나도 삶의 균형이 깨지기 때문에 되도록 내 삶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편이다. 내가 내 삶을 사랑하고 나의 일상에 충실한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가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일상을 충실하게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육아 철학이다.

이도저도 아닌 상태에서 미안해하기보다, 아이와 가지는 시간만큼은 최선을 다해 사랑을 표현하고, 그 외의 시간을 날 위해 쓴다면 아이에게 미안하지 않아도 되고, 나 자신에게도 만족하는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고윤지는 주 5일 근무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동시에 독서모임 6팀을 운영하는 리더이고, 책을 통해 자존감 트레이닝을 돕는 독서코칭가이기도 하다. 평일에는 일하고 주말이면 아이와 함께 서울과 인천을 오가며 독서모임이나 강연을 다닌다. 엄마들의 성장과 행복, 자존감 향상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 지금은 작가의 꿈을 꾸며 책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