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만점 인생, 정답은 바로 내 안에 있다

개성 만점 인생,
정답은 바로 내 안에 있다캐릭터 디자이너 권순호(호조) 작가

글. 김지원 | 사진. 김선재 | 2017년 3호

2017. 05. 17 335

처음엔 토끼인 줄로만 알았다. 노란 얼굴에 하얀 귀를 가진 캐릭터 ‘무지’. 부끄러운 듯 두 손을 모아도 가려지지 않는 얼굴을 가리려 애쓰는 모습이 귀여워 말 대신 자꾸 이모티콘 캐릭터를 사용한다. 그런데 이럴 수가! 무지가 토끼 옷을 입고 있는 단무지란다! 무슨 사연이기에 토끼 옷을 입고 있는 거지? 볼수록 사랑스러운 개성 만점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캐릭터 디자이너 권순호 작가를 만나 보았다.

열 마디 말보다 명쾌한 하나의 그림. 독특한 표정과 과장된 행동의 일곱 캐릭터는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에 혜성처럼 등장해, 5천만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대화에 활기와 즐거움을 더한다. 싸이월드의 엽기 캐릭터 ‘시니컬 토끼’부터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캐릭터, 카카오톡의 ‘카카오 프렌즈’에 이르기까지. 권순호 작가의 손끝에서 탄생한 개성 만점의 캐릭터들은 재기발랄한 각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수십, 수백 장의 스케치 과정을 거쳐 탄생한 이들의 탄생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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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빙 돌아 꿈을 향해 전진!

권순호 작가는 중학교 무렵, 일찌감치 ‘그림’으로 진로를 결정했다. 해도 늘지 않는 공부와 달리 그림 그리기만은 자신이 있었고, 그림을 그릴 땐 행복하다고 느껴졌다. 공부 대신 그림을 선택하는 것이 망설여졌지만 몇 번을 생각해도 같은 결론에 다다르자 선택은 분명해졌다. 그런 꿈이 흔들린 적도 있다. 군대에서 만난 연기자 지망생 동기를 보고 연기자로 외도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무대공포증만 확인한 채 불발되고 말았다.
어쩌면 소설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 같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림을 그린다는 정해진 답을 놓고 쉽사리 선택하지 못하고 빙빙 돌아가는 심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년이 넘도록 손대지 않았던 그림을 다시 일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권순호 작가는 디자인학원에 등록해 다시 선긋기부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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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의 날개를 펴는 일탈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일하게 된 곳이 바로 넥슨이었다. 넥슨에서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는 일을 했지만 무언가 부족했다.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걸 마음껏 그리는 작업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불만이 계속 쌓이는데 회사 안에서 풀 수 있는 방법이 없었어요. 그래서 ‘호조넷’을 만들었죠. 제 닉네임을 딴 아주 간략한 사이버공간이었어요. 완성된 무언가를 올리자는 욕심보다 되는대로 조금씩 나만의 표현을 담아내는 통로로 활용하자 싶었죠.”
한 장의 선 굵은 그림 안에 이야기를 담아내는 권순호 작가의 능력이 호조넷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캐릭터에 대한 지향도 개념도 없을 무렵이었는데, 선이 굵은 스케치 안에는 캐릭터의 요소가 듬뿍 묻어났다. 호조넷에 오른 그림은 마니아들에게 큰 사랑을 받으면서 이 사이트로, 저 사이트로 퍼날라졌다. 개인의 일탈로 시작한 사이트는 그의 역량이 만개하는 공간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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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숨 쉬는 캐릭터의 탄생!

웹 기반 SNS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싸이월드 미니홈피 스킨 디자인과 새롭게 옮긴 애플리케이션 개발 회사의 일을 병행하면서 권순호 작가는 처음으로 캐릭터다운 캐릭터 ‘시니컬 토끼’를 만들었다. 시니컬 토끼는 그의 캐릭터 디자인 향방을 결정할 만한 중요한 계기가 됐다. 모바일 메신저인 카카오톡이 등장할 무렵이었다.
“카카오 측으로부터 캐릭터 디자인 제안을 받고 6명의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수많은 시안을 거쳐 좀 더 개성 있으면서 대중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무지’가 합류하면서 7명의 캐릭터가 완성되었죠.”
호조도 처음에는 캐릭터 역시 그림의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캐릭터가 많아지면서 스스로 생명을 가지고 숨 쉰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는 설정만 가지고 있었지 이야기를 붙이진 않았거든요. 캐릭터만의 스토리가 사용자의 대화를 망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처음엔 이야기가 붙는 걸 경계했어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사용자로부터 캐릭터들의 사연이 붙는 거예요. 뒤늦게 저 역시 즐거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완성해갔죠.”
디자인하는 새로운 표정이 늘수록 캐릭터의 매력과 생명력은 더해졌다. 큰 사랑을 받은 무지, 콘, 어피치, 제이지, 프로도, 네오, 튜브는 곧 ‘카카오 프렌즈’로 명명되어 카카오톡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됐다.
“캐릭터의 매력을 뒤늦게 알았어요. 이전에 그린 그림 중 일부가 캐릭터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다시 돌아보게 됐고요. 지금은 제가 ‘캐릭터 디자이너’라는 자각을 하는 편이에요. 캐릭터라는 게 덜렁 그려놓는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다양한 상황에 처한 캐릭터의 모습을 계속 그리고, 다듬고, 성격을 표현해야죠. 캐릭터 디자이너란 캐릭터의 삶을 함께 가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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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실패해도 다시 한 발 더 내디딘다

“제가 세상에 내놓은 모든 캐릭터들에는 저와 닮은 모습이 들어있어요. 순간순간마다 제멋대로 도전해 온 지난날이 거기 모두 들어있죠.”
권순호 작가는 만화가를 꿈꾸다가 흐지부지해졌던 학창시절도, 연기자에 도전한 날도, 아르바이트로 지냈던 시간도, 실패도 모두 삶의 일부로 가치 있다고 여긴다. 방향은 달랐을지언정 그게 현재의 자신을 지탱하는 자양분이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도전을 이어가기 위해 사소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으려 관찰한다. 영화, 인터넷, 일상 모두가 그에겐 배울 거리다. 30대에 들어서 자주 다닌 여행은 시야의 폭을 넓혔다.
“바둑도 훈수를 둘 때 더 잘 보여요. 안에서는 보지 못한 걸 바깥에서 볼 수 있어요.”
지금도 권순호 작가는 대화면의 데스크톱 PC 대신에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걸 즐긴다. 언제든지 훌쩍 자리를 박차고 나가 밖에서 작업하기 위해서다.
“많은 분들께서 메일을 보내세요. 중・고등학생, 대학생은 물론 초등학생도 있고, 직장에 다니다가 자신의 진로를 바꾸고 싶어 하는 분들까지 있죠. 캐릭터 디자이너가 되려면 뭘 공부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죠. 대부분 다 답장을 해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요. 사람의 길은 제각각이잖아요. 스티브 잡스나 마크 저커버그 같이 되고 싶다고 해서 그와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나고, 같은 유년 시절을 겪고, 같은 실패를 경험할 수는 없어요. 똑같은 코스로 길을 가려 하지 말고 자기만의 길을 찾으라고요. 단, 앞으로 수없이 겪게 될 실패를 각오하라고요. 10번 도전하면 11번 실패한다고도 해요. 그때 포기한다면 거기서 끝이겠지만 계속 나아가면 실패가 실패로 남지 않을 거라고요.”
자신만의 표현을 찾아내고 그 길을 걸어가는 권순호 작가. 그는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지금도 계속 실패하면서 다음 한 발을 내딛는다. 호조만의 방식대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