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이기려 말고 나를 이겨라!

남을 이기려 말고
나를 이겨라!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 선수

글. 김양희 | 사진 제공. 삼성 라이온즈 | 2016년 1호

2016. 01. 08 660

“야구만 하게 해 주면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절대 야구 때문에 실망시키지 않겠어요.”
초등학교 4학년, 야구 선수를 꿈꾸는 소년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만큼 야구가 하고 싶었다. 기나긴 설득 끝에 어린 이승엽은
야구 유니폼을 입었고, ‘공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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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선수를 꿈꾸던 소년, 그라운드의 전설이 되다

2015 시즌 프로야구 신인상에 빛나는 구자욱 선수의 어릴 적 멘토는 지금은 같은 삼성 유니폼을 입고 있는 이승엽이었다. 구자욱은 “이승엽 선배가 너무 좋아서 외다리 타격 방법을 따라해 보곤 했다.”고 말했다. 2012년 처음 프로 유니폼을 입고 이승엽을 만났을 때의 감격이란……. 구자욱 선수는 말한다. “이승엽 선배와 함께 뛰는 게 목표였다. 프로 훈련 때 처음 보고 아주 신기했다. 나이 차가 많은데도 평소에 긴장을 풀어 주려고 장난도 많이 친다. 야구를 정말 사랑하는 게 눈에 보인다.”
류중일 삼성 감독은 “이승엽은 삼성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타자다. 모든 선수의 멘토”라며 “후배들이 이승엽을 본보기 삼았으면 한다.”고 했다. 한 시즌 56홈런(2003년), 한국 야구 사상 최초의 통산 400홈런(현재 416개·한일 통산 575개) 그리고 역대 최다 골든글러브 수상(10회)의 화려한 이력 때문만은 아니다. 늘 바르고 성실한 그는 ‘국민 타자’ 그리고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린다.

그라운드 전설 이승엽의 멘토

“어릴 적 장래 희망을 적는 곳에 친구들은 대통령, 의사 등을 썼는데 저는 늘 ‘야구 선수’라고 썼어요. 친구들과 야구장에 가서 이만수(전 SK 감독) 선수의 홈런을 보고 함성을 지르곤 했죠.”
초등학교 선배이기도 한 이만수가 야구 클리닉 행사 때 모교를 방문한 기억이 그의 머릿속에 아직도 생생하다.
“딱 한 번 학교에 왔는데 그때 제게 힘이 되는 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우상의 칭찬 한마디는 꿈을 향해 힘차게 달릴 수 있는 동기가 되기에 충분했어요. 제가 프로에 들어가서 같은 방을 쓴 적이 있는데 심장이 두근거려서 숨조차 제대로 못 쉬겠더라고요. 말 한마디 못 꺼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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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은 있어도 ‘포기’는 없다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갑자기 팔꿈치가 아파 왔다. 하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았다. ‘아프다’는 말을 하면 아버지가 당장이라도 야구를 그만두게 할 것 같았다. 동네 약국에서 몰래 진통제를 사 먹고 마운드에 올라 공을 던졌다(고등학교 때까지 이승엽의 수비 포지션은 투수였다). 약을 먹지 않고는 도저히 공을 던질 수 없었다.
경북고등학교 1학년 때는 허리까지 아파서 3개월 동안 야구공을 놓아야만 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잘 걷지도 못할 만큼 상태가 아주 심각했다.
“하루는 선배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가다 넘어졌어요. 그런데 허리가 너무 아파서 한참을 못 일어났죠. 진짜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어요. 내 몸을 내가 어쩌지 못했을 때의 느낌은 참…….”
하지만 아파서 쉴 수밖에 없었던 시간이 전화위복이 되었다. 몸무게가 10㎏ 이상 늘어 타구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고, ‘조금 모난’ 성격도 온순해졌다. 부상과의 싸움에서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아버지에게 ‘야구로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더욱 담금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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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1995년, 프로 입단 뒤 왼팔꿈치 수술을 받고 재활 훈련을 하던 중 타자로 전향한 이승엽은 더 나은 성적을 내기 위해 ‘외다리 타법’으로 타격 폼을 바꿨다. 결국 그는 “한·미·일 타자 통틀어 가장 이상적인 타격폼”(김성근 감독)을 완성해냈다. 한때 일본에서 성적이 부진했을 때는 김성근 당시 지바 롯데 인스트럭터의 지도를 받으며 손바닥에 군살이 박이고 피가 날 정도로 훈련을 했다.
이승엽은 ‘국민 타자’라는 명성에 기대지 않고 적극적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저는 제 자신을 잘 파악하는 편이에요. 예전에 잘했다고 거기에서 멈추면 기회가 와도 기회를 살릴 수 없어요.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 상대 투수에 대한 분석이 있어야만 프로라는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요. 그래서 지금도 더 나은 결과를 위해 훈련을 멈출 수가 없어요.”
‘진정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달려왔기 때문일까. 이승엽은 2015년, 타율 3할 3푼 2리, 26홈런 90타점의 성적을 내면서 5년 연속 삼성의 정규리그 우승에 밑돌을 놨다. 3할 3푼 2리는 데뷔 이후 최고 타율이다. 게다가 마흔 살 선수가 25홈런 이상을 친 것은 이승엽이 최초다. 생애 열 번째이자 역대 최고령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기도 했다. 한 중학교 방학교재 교과서에는 그의 인터뷰가 실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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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이승엽의 시간

야구장에서는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그는 오롯이 두 아들 은혁(12세), 은준(6세)의 아빠로 돌아간다. 그날의 야구 성적이 좋으면 두 아들에게 “아빠 봤어? 잘했지?”라고 자랑하면서 뿌듯해하고, 성적이 나쁘면 “아빠가 미안해. 내일은 더 잘할게.”라고 새롭게 다짐한다. 늘 최선을 다하는 아빠를 보여 주는 것이 아이들에게 최고의 교육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역 선수로 뛰는 것도 이제 2년밖에 안 남았어요. 그동안 아빠가 활약하는 모습을 최대한 보여 주고 싶어요.”
이승엽은 아이들에게 지금껏 “공부해!”라는 말을 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다만 “한번 할 때 집중력 있게 몰두해서 하라.”고 말한다. 공부만을 강요하거나 단점을 고치려 하기보다는 아이의 ‘개인차’를 이해해서 아이 나름의 ‘강점’을 살려 주고 싶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배려하는 마음이다. “아이들이 어려서 자기만 챙기려고 할 때가 있어요. 내가 두 개 가지면 하나는 남에게 나눠 줄 수 있는 어른으로 자랐으면 해요. 제가 어릴 때 아버지께서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어요.”
이승엽은 통산 400홈런을 쳤을 때 받은 상금(5000만 원)을 모교인 경북고등학교에 전부 기부했고, 2015시즌 뒤 2년 36억 원에 재계약을 했을 때는 계약금 일부(3억원)를 한국 유소년 야구 발전에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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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어야 ‘한다’

단지 좋아서 시작했던 야구, 지금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야구 선수가 된 이승엽은 꿈을 키우는 아이들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무엇이든 재미있게 했으면 좋겠어요. 요즘 사람들은 결과나 승부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편하고 재미있게 자신의 일을 즐길 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상대를 이기려고만 하는 연습이 아니라 자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지는 게 중요해요. 좋은 결과는 나중에라도 언제든지 낼 수 있어요. 건강하게 잘 먹고 진짜 재미있게 자신의 일을 즐기다 보면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