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그 뒤에 숨겨진 기질의 비밀

성공, 그 뒤에 숨겨진 기질의 비밀

글. 휘민(시인) | 일러스트. 김영진 | 2016년 1호

2016. 01. 08 1062

일반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천재적 기질을 타고난 천재형과 후천적인 노력과 의지로 성공을 거머쥔 노력형으로 나뉜다. 우리 아이는 모차르트일까? 살리에리일까?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으로 이름을 알린 위인(천재형)이나 한 분야에서 꾸준히 노력해 성공의 반열에 오른 위인(노력형)들의 일화를 통해 자신만의 기질과 성향을 잘 활용하는 노하우를 알아보자.

천재형

남다른 재능과 감각을 타고난 사람. 타인의 간섭을 싫어하는 자유주의자. 개성으로 똘똘 뭉친 이들은 때로 이단아가 되기도 하지만, 한 시대의 획을 긋는 아이콘이 된다.

  • 혁신과 열정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

    1984년 1월 22일, 미 대륙 전역에는 슈퍼볼 결승전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광고는 중간에 딱 한 번. 당시 50만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광고비를 지불해야 하는 60초짜리 광고를 따낸 행운아는 바로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였다. 광고는 조지 오웰이 예고한 암울한 미래 사회를 그려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커다란 해머를 든 여자가 달려오더니 독재자의 영상이 흘러나오는 스크린에 해머를 던져버린다. 그리고 이틀 뒤, 애플은 ‘매킨토시 128K’를 출시한다. 개인용 컴퓨터 시대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 장면은 당시 적수가 없었던 컴퓨터 업계의 ‘빅브라더’ IBM을 향해 던진 잡스의 자신만만한 도전장이었다.
    스티브 잡스에게는 시대를 앞서 보는 남다른 시각과 기술과 감성을 접목시키는 뛰어난 감각이 있었다.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통섭과 융합의 능력, 그것은 틀에 박힌 사고에 길들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최고의 혁신가이자 진정으로 일을 사랑한 사람이기도 했다. “내가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내가 하는 일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사랑하는 사람을 찾듯 사랑하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라는 잡스의 말은 지금도 우리 가슴을 고동치게 한다.

  • 바람 구두를 신은 사나이 아르튀르 랭보

    일찍이 문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랭보는 어린 시절부터 라틴어 고전과 프랑스 현대문학 작품을 읽고 외우기를 거듭했다. 지적 욕구와 탐구정신은 그를 자연스레 시로 이끌었다. 그러다가 1871년 5월, 랭보는 스승인 이장바르와 당대 최고의 유명 시인 폴 드므니에게 자신의 시론을 담은 편지를 보낸다. 그것이 바로 유명한 ‘견자(見者)의 편지’다. 편지에서 열일곱 살의 천재 소년은 당돌하게 당대의 시인들을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거침없이 쏟아 낸다. 시인은 감각과 착란에 의해 자신을 의식적으로 견자로 만들어야 한다고. 그 후 의욕적으로 산문 시집 [지옥에서의 한 철]을 펴냈지만, 랭보는 열아홉의 나이에 스스로 절필을 선언한다. 그리고 특유의 방랑벽으로 또다시 유럽 전역과 아프리카 등지를 떠돌아다니며 마지막까지 ‘바람 구두를 신은 사나이’다운 행보를 이어갔다.
    랭보는 프랑스 문학이 낳은 가장 ‘문제적인’ 시인이다. 그의 삶은 기행과 방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주체할 수 없는 광기와 열정, 방랑. 그러나 파란만장한 삶만으로 그를 평가한다면, 우리는 랭보라는 천재의 반쪽만 아는 것이다. 랭보는 10대에 자신의 문학관을 완성한, 세계 문학사를 통틀어도 정말 흔치 않은 천재였다.

  • 다재다능한 천재 예술가 강세황

    표암 강세황은 어려서부터 시와 그림에 두각을 나타냈다. 여섯 살부터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렸는데, 그가 열세 살 때 쓴 글씨를 보고 놀라워하며 병풍을 만든 사람도 있다고 한다. 시와 글씨, 그림 다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지녔으나 그는 벼슬에 뜻이 없었다. 그래도 늘 정진하며 자신의 기량을 갈고닦았다. 그러다 보니 심지어 예순이 되도록 백수로 지냈다. 하루는 강세황이 조정에서 베푸는 경로잔치에 참석했는데, 그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영조가 9급 말단 벼슬 하나를 내렸다. 무덤을 지키는 참봉이라는 벼슬이었다. 미미한 출발이었다. 그러나 이는 조선 정계에 강세황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일 뿐이었다.
    그 후 강세황은 일흔 살에 오늘날 서울시장직에 해당하는 한성부 판윤에 오르고, 일흔둘에는 사신 대표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는 뛰어난 정치가이자, 식견과 안목이 뛰어난 평론가였으며, 당대 화단에 남종문인화풍을 정착시킨 대가이자 조선 최고의 화가 김홍도의 스승이기도 했다. 강세황, 그는 대기만성형의 표본 같은 인물이다. 자만하지 않는 자세와 성실함은 그의 말년을 존경과 행복으로 이끈 두 개의 동력이었다.

노력형

타고난 재능보다 후천적 노력으로 일가를 이룬 사람. 뚜렷한 목표의식 아래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한다. 무쇠를 단련시켜 천하제일의 명검으로 만들어내는 인물이다.

  • 세계 피겨의 '살아있는 전설' 김연아

    열한 살의 김연아가 신혜숙 코치를 만나 ‘제2의 미셸 콴’을 꿈꾸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더블 악셀을 처음 배우는 날이었다. 신 코치는 말했다. “점프는 자세가 중요해. 넘어지는 게 무섭다고 대충 뛰기 시작하면 습관이 돼서 나중엔 고칠 수가 없어.” 다들 의욕은 넘쳤지만 몸이 따라 주질 않았다. 여기서 ‘쿵’ 저기서 ‘쿵’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점프 훈련이 마음처럼 되지 않자 김연아의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사이 신 코치는 볼일이 있어 자리를 비웠고 아이들은 지쳐 주저앉고 말았다. 얼마 뒤에 신 코치가 돌아왔을 때, 텅 빈 경기장 한구석에는 김연아만 홀로 남아 있었다.
    그날 김연아는 수백 번 엉덩방아를 찧으면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나고 또다시 일어났다. 이러한 근성과 도전은 후에 성공으로 되돌아왔다. 마침내 그녀는 동계올림픽, 세계 선수권, 4대륙 선수권,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모두 우승하며 사상 최초로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스포츠 스타 중에는 김연아처럼 유독 ‘노력형 선수’가 많다. ‘피겨 여왕’ 김연아를 있게 한 것도 타고난 재능에 더해진 피나는 노력 덕분이었다. 피겨 불모지에서 태어난 김연아. 그녀는 자신의 재능에 자만하지 않고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한 연습벌레였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성공한 스타가 아니라 꿈을 향해 노력한 스케이터, 김연아로 기억되고 싶다.”라고.

  • 한계를 뛰어넘은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

    다섯 살 때 우연히 축구를 시작한 메시는 축구 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유소년 축구팀에서 활약하며 한발 한발 꿈에 다가갔다. 어린 메시는 벼룩이란 애칭답게 몸놀림이 가벼웠다. 하지만 키가 자라지 않았다. 열한 살이 된 메시의 키는 고작 130cm였다. 성장호르몬결핍증이었다. 매일 아픔을 참아 가며 호르몬 주사 치료를 시작했으나 한 달에 1,000달러나 들어가는 치료비가 문제였다. 그건 메시의 아버지가 받는 월급의 절반에 해당하는 큰돈이었다. 결국 메시는 스페인행을 택한다. 우여곡절 끝에 유소년 아카데미 스페인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프로가 되기 전, 메시의 노력 뒤에는 이렇듯 꿈이라는 원동력 이외에 치료비를 마련해야 한다는 절박한 사정이 있었다.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신체적 한계에 부딪힌 메시. 그러나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169cm의 단신 축구 선수는 마침내 ‘축구의 신’으로 거듭났다. 남들보다 몸이 날랜 메시는 자신의 빠른 발을 활용해 특유의 ‘팬텀드리블’을 완성했다. 여기에 환상적인 ‘골결정력’까지 갖추며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메시는 말한다. “성공을 향한 길에 단점이나 약점이란 없다. 오직 약한 마음만 있을 뿐이다.”라고.

  • 솔직하고 삐딱한 글쓰기로 세상을 사로잡다 서민

    어린 시절 서민은 못생긴 외모에 말까지 더듬는 소심한 아이였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강했지만 무엇 하나 잘하는 게 없었다. 글쓰기는 그런 소년이 열등감을 이겨 내고 타인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었다. 그는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노트와 볼펜을 가지고 다니며 글감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를 했다. 글맛을 본 청년은 야심 차게 준비한 첫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 그러나 회심의 역작이라 생각했던 [소설 마태우스]와 잇달아 써낸 몇 권의 책은 그에게 쓰라린 패배감으로 되돌아온다. 이후 그는 10여 년 동안 혹독한 글쓰기 훈련에 돌입한다. 노력은 고달팠지만 실력은 쉽사리 늘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글쓰기가 삶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2009년부터는 <경향신문>에 칼럼을 연재하며 ‘서민적 글쓰기’를 세상에 알렸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진 필력가, 글 좀 쓰는 과학자가 되었다.
    서민은 말한다. “나에게 글쓰기는, 솔직함이다. 간결함이다. 꾸준함이다. 비유하기다. 돌려까기다. 웃기기다. 정확함이다. 삐딱함이다. …… 지옥훈련이다!”라고. 그래서 그의 글은 쉽고 재미있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쉽게 쓸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그 방면의 진정한 고수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