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로 계산할 수 없는 영역을 만들어 가다

확률로 계산할 수 없는 영역을
만들어 가다영화감독 장진

글. 이기원 | 사진 제공. 수현재 컴퍼니, 필름있수다 | 2016년 12호

2016. 12. 16 93

어쩌면 늘 이렇게 참신한 작품과 소재를 만들어 내나 싶은 사람들이 있다.
천재로 불리는 작가이자 연출가 장진 감독 역시 그중 한명. 그의 창작 비법을 들여다본다.

많은 작품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장진이라는 이름이 신비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마 20대부터 ‘천재’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약간은 헐렁해 보이는 그의 대중적 태도 때문일 수도 있다. 말하자면 권위적이고 엄숙해 보이는 감독의 이미지보다는 친근하고 자유분방한 모습이 더 강한 것이 장진이라는 남자다. 그가 20년 전에 무대에 올렸던 <택시드리벌>이나 <서툰 사람들> 같은 연극을 생각해 보라. 아니면 <킬러들의 수다>나 <아는 여자> 같은 영화는 어떤가. 그는 다소 뻔해 보일 수 있는 줄거리를 자신만의 독특한 코미디 코드로 만들 줄 아는 감독이다. 그래서 아마 ‘장진식 코미디’라는 단어가 고유 명사처럼 생겼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사실 저는 ‘장진식 코미디’ 같은 말을 들으면 민망해요. 제 작품이 무슨 고유명사 같은 게 붙여질 만한 장르가 아닌데…… 다만 엄숙함에 대한 반감이나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이상한 농담을 계속 던지는 진행을 ‘장진식’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사실 그 전에도 다 있었어요. 제가 처음 한 건 아니에요.”
겸손의 말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걸 했다면 장진이라는 이름이 이렇게 유명해지지는 못했을 테니까. 예컨대 그가 고작 20대 중반의 나이에 처음으로 무대에 올렸던 연극 <택시드리벌>은 지금도 다른 연출가에 의해 리메이크되고 있는 21세기의 고전이다. 물론 그는 ‘어리다는 이유로 언론이 기사를 많이 써 준 덕분’이라고 손사래를 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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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이면 희곡 한 편을 써 내려가는 사람

연극 연출가로 성공한 뒤 그의 행보는 전보다 훨씬 다양해졌다. 영화와 텔레비전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폭넓은 활동을 했고, 2011년에는 예능 <SNL>의 한국판 첫 연출을 맡기도 했다. 당시 그가 보인 통쾌한 풍자는 여전히 회자될 정도다. 최근에는 KBS <언니들의 슬램덩크>에서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홍진경 씨와의 인연으로 시작됐어요. 처음에는 ‘홍진경 쇼’를 만들겠다는데 저는 재미가 없을 것 같았어요. 그러다 제가 찍은 페이크 다큐멘터리 영상을 살짝 보여 줬더니 반응이 좋아서 시작됐죠. 그런데 찍고 나니 너무 아쉬워요. 사실 서포터 역할만 하는 거였는데 마치 제가 연출하는 것처럼 돼버렸어요. 하하.”
이렇게 종횡무진으로 활동하던 그는 지난해 13년 만에 연극 <꽃의 비밀>을 통해 무대로 돌아왔다. 물론 그가 직접 쓴 작품이다. 지난해에 이어 최근 다시 한 번 두 번째 막이 올랐다. 이미 영화감독으로도 충분히 검증된 그가 굳이 연극 무대로 돌아온 이유는 뭘까.
“창작자로서, 40대를 통과하는 개인으로서 고민이 많았어요. 정말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초심으로 돌아가 썼어요.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맴돌던 이야기를 사무실에 앉아서 며칠 만에 정리했죠. 탈고하는 데 일주일 정도 걸렸어요. 연극 <얼음>도 닷새 만에 썼죠. 원래 빨리 쓰는 편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특히 빨리 썼어요. 갈증이 심했나 봐요. 하하.”
장진을 두고 ‘천재’라는 타이틀을 붙였던 건 언론보다 함께 연극하는 동료들이 먼저였다. 정말 빠른 시간에 놀라운 작품을 써 내려갔기 때문이다. 그의 대표작들 모두 짧으면 일주일, 길어도 열흘 안에 쓰인 작품들이다. 물론 빨리 쓴다고 좋은 작품일 리 없다. 속도가 작품성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희곡 하나를 완성하는데 길게는 일 년이 걸리는 작가들도 있는 걸 생각하면 장진의 작법에는 분명 놀라운 지점이 있다.
“우선 작품을 쓰게 되는 에너지가 있어야 하죠. 물리적인 에너지도 중요하지만 일종의 갈증 같은 게 있어야 해요. 몇 년 동안 머릿속에 맴돌던 뭔가가 어느 순간 차오르면 비로소 책상에 앉아 쓰게 돼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제가 엄청난 영감을 받아서 그 순간부터 작품을 쓰기 시작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에요. 몇 년 동안 계속 아이디어를 저장해 두는 거예요. 작품만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작품을 머릿속에서 놓지 않는 거죠. 무의식중에도 뇌가 계속 그 작품을 생각할 수 있도록. 그래서 저는 열흘이 넘었는데도 작품이 완성되지 않으면 안 써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오랫동안 쌓아온 얘기가 열흘이 넘어도 진전이 없다면 아직 충분히 익지 않은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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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메모를 안 해요

우리는 메모의 중요성에 대한 얘기를 자주 듣는다. 자기계발서나 성공 관련한 책에 나오는 창작자들, 기업의 CEO들이 입이 아프게 강조하는 것이 바로 메모 습관이다.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려야 하는 장진 감독에게도 아마 기록은 필수적인 습관일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뜻밖의 대답을 내놓는다.
“저는 메모를 전혀 하지 않아요. 작품에 필요한 감정 같은 것들은 늘 머릿속으로 잠깐씩 떠올리는 정도예요. 그 수많은 아이디어를 붙잡기 위해 메모하기 시작하면 너무 피곤해져요. 당장 어떤 작품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전 그렇게는 못 살아요. 작가와 글쓰기는 짝사랑의 관계여야 하는데, 애인이 돼서 옆구리에 딱 끼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고통이 되거든요. 글쓰기가 고통이 되면 작가에겐 최악이라고 생각해요. 머릿속에서 사라지면? 그건 그냥 사라지게 두는 거죠. 붙잡으려고 하면 부패돼요. 삼 년 전에 메모해 뒀던 재미있던 대사가 지금도 재밌다는 보장이 어딨어요?”
그건 성공한 연출가가 된 후의 얘기는 아닐까 싶었지만 그는 대학 시절부터 그랬다고 한다. 일상의 모든 경험들이 다 자산이며 정말 자신의 마음에 와 닿았던 대사나 상황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선명하게 떠오른다고 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아이디어가 체득되도록 하는 것, 그것이 장진만의 창작 비결이라면 비결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과 소재들은 어떻게 찾을까. 어딘가 2% 부족하고 어설픈 킬러들의 대화(<킬러들의 수다)>, 아름다운 여자 스토커(<아는 여자>), 여자가 되고 싶어 하는 강력반 형사(<하이힐>), 목사와 무당이 직업인 형제(<우리는 형제입니다>) 등 그의 작품에는 쉽게 상상하기 힘든 상황과 캐릭터들이 저마다 활짝 꽃을 피운다.
“우선 시대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죠. 시대를 보는 시각이나 깊이는 분명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국 연극을 보는 것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 그리고 또 하나는 결국 ‘연극은 거짓말’이라는 분명한 명제예요. 살아가면서 자신의 경험이나 데이터 안에서 벌어지지 말아야 할 상황이 생길 때 사람들은 ‘뭐 이런 연극 같은 일이 다 있어’라는 말을 쓰잖아요. 그건 결국 상상력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생각해요. 좋은 상상력이 나오려면 규제받지 말아야 하죠. 왜 그런 뜬금없는 상황을 상상하냐고 물으면 거기서 상상력이 끝나는 거예요. 저도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지만 점점 상상력이 중요한 시대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인공지능이 이렇게 성장하는 걸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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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인공지능에 쉽게 점령당하지 않을 겁니다

장진 감독은 연극으로 시작했지만 누구보다 빨리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는 연출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는 이미 2000년에 <극단적 하루>라는 인터넷 전용 영화를 만들었고, 2003년에는 모바일 전용 영화인 <아버지 몰래>라는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결국 호기심이죠. 물론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이해를 못했어요. 이 조그마한 화면으로 무슨 드라마를 보느냐고. 하지만 오히려 창작자들과 달리 대중들은 선입견이 없거든요. 21세기가 매체 통합 시대로 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는 올여름 전 세계를 뜨겁게 달궜던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전을 무척이나 흥미롭게 봤다고 했다. 알파고가 놓는 수를 보는 재미가 아니라 알파고가 인간의 예측대로 수를 뒀을 때, 혹은 인간의 예측을 빗나간 수를 뒀을 때 반응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고.
“인공지능은 며칠 후, 혹은 몇 주 후의 미래를 보여줄 수 있잖아요. 바둑의 다음 수를 예측할 수도 있고, 주가를 예측할 수도 있겠죠. 그래서 사람들이 인공지능에 그렇게 열광하는 것 아닐까요. 하지만 문학이나 예술은 단순히 확률로 계산할 수 없는 영역이잖아요. 아직 인공지능이 예술 분야를 점령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는 인공지능이 득세할 미래를 디스토피아로 보지는 않는다고 했다. 중요한 건 인공지능을 만들어 이용하는 사람일 거라고. 다만 PC나 스마트폰에서 눈과 손을 떼지 못하는 요즘 아이들을 보면 조금 걱정된다고 했다. “저 아이들이 커서 작가가 되고, 공학자도 될 텐데. 과연 인간이나 자연에 대해 얼마나 생각할까 싶어요. 그래서 역설적으로 사람에게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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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줘야죠

장진 감독은 2007년 열 살 연하의 아내와 결혼했다. 당시 아내의 미모보다 더 화제가 됐던 건 그녀가 멘사 회원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였다. 아내인 차영은 씨는 대학원에서 영재 교육을 전공하기까지 했으니 사뭇 그의 교육관도 궁금해진다. 천재 감독 아빠와 멘사 회원 엄마는 대체 어떻게 아이를 가르치고 있을까.
“아내가 이렇게 말한 적 있어요. 영재 교육은 잘난 1%가 아니라 조금 특별한 1%를 위해 필요한 거라고.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귀한 거잖아요. 다수의 생각만으로 살짝 다른 사람을 이상하게 취급하는 건 잘못된 거죠. 두 아들에게 가르치는 건 딱 하나에요. 노동의 가치죠. 저는 아이들한테 심부름을 많이 시켜요. 그렇게 이런 저런 일을 하다 보면 노동의 가치를 알게 되고, 누구나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걸 느낄 수 있게 돼요.”
달변인 장진 감독의 입에서는 다양한 주제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에게도 불안함은 있을 것이다. 젊은 천재로 불렸던 그도 이제 40대 중반. 사회는 나이에 관대하지 않고, 그 역시 언젠가 시대에 뒤처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인터뷰 하다 보면 사실 비슷한 질문이 많아요. 그런데 같은 질문을 해도 제 경우에는 그때그때 답이 조금씩 달라져요. 그게 저예요. 전 계속해서 변하고 싶고, 그래야 좀 더 오래 관객 곁에 있을 수 있다고 봐요. 그래서 저는 최대한 이 일을 오래 하고 싶어요. 저는 글을 쓸 때 제일 행복하거든요.”